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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라하, 왕을 부르는 백제의 존칭

근초고왕, 어라하라고 불린 백제의 군주.

드라마 '근초고왕'을 보신 분은, 극 속에서 왕을 '어라하'라고 칭한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백제에서는 왕을 어라하라고 불렀다는 기록을 고증한 것이지요.

오늘은 이 어라하라는 명칭의 역사적 유래에 대해 얘기해 보려고 합니다.

 

1. 어라하 명칭의 개요와 유래

1) 개요

중국의 역사 서적인 《주서》(주책)에 기록된 백제에서 사용되었던 군주의 칭호입니다.

어라하(於羅瑕)는 귀족들 간에 사용되는 호칭이었으며, 반면 백성들은 왕을 건길지라고 부르며 칭호에 차이가 있었습니다.

덧붙여 왕비의 경우 어륙으로 불렸는데, '어륙' 역시 귀족들이 사용하였던 호칭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백제 지배층과 백성 간의 언어 차이가 있었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백제 초창기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이주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2) 반도 일본어설 측면에서

이것은 "반도 일본어설"과 관계가 있습니다.

한반도 북부에 고조선을 대표로 하는 한국어족 화자들이 있었고,

남부에는 진국을 대표로 한 일본어족 화자들이 존재했다는 겁니다.

세형동검을 통한 한국어족 화자의 남하와 함께 한반도 남부의 지배층이 되었고(삼한),

일부 지배를 받는 층은 7세기부터 일본어족을 사용했다는 가설입니다.

삼국사기에 적힌 삼국의 지명과 그에 대한 어원과 뜻 풀이가 고대 일본어와 유사한 것이 주요 근거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한국어족 화자들의 남하에 참여하지 않은 일본어족 화자들은 일본 열도로 건너가 야요이인,

즉 현대 일본인의 조상이 되었으며, 따라서 일본인과 반도 일본어족 화자들은 서로 사촌 같은 관계라는 겁니다.

3) 반론

그러나 조선시대 사대부와 신하들은 왕을 주상(主上), 금상(今上), 전하(殿下)와 같이 부르고

일반 평민, 백성들은 나라님, 임금님, 상감마마와 같은 다른 방식으로 부르는 사례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지 계열의 존칭 접미사가 고구려(막리지, 하라지 등)부터 가야(한기/간지 등)까지

당시 한반도 전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반도 일본어설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띄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마도 먼저 남하하여 삼한을 형성한 고조선계(목지국, 건마국 등)의 언어와

그 이후에 남하한 부여계의 언어 차이를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고조선이든 부여든 언어 계통적으로는 모두 동일한 예맥계로 확인되고 있습니다.

 

2. 다른 한반도 국가들의 명칭

'하'(瑕)는 '가'(加)와 동일하며 가야에서 한 번만 확인되지만 '기부리지가'(己富利知伽)와 같은 형태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가야와 신라는 지도층의 칭호로 간지, 한기(干支, 旱岐)를 사용하였습니다.

'어라'(於羅)는 경주 알천(閼川)의 아리나례하(阿利那禮河), 알지거서간(閼知居西干),

김알지(金閼智)의 '알'과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왕을 다소 다르게 표현했지만 모두 당시에 서로 통용되던 표현들이었습니다.

탐라국의 을나(乙那)와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아라, 아리에는 클다는 의미가 있고, 칸, 카간, 가한과 같은 글자를 음차한 것이라는 설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어라하는 아라(크게)+카간(임금)이 결합된 단어로서, 건길지와 어라하는 것은

사실상 같은 의미이지만 글을 옮겨 적는 과정에서 다르게 표기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지역에 따라 발음이 약간씩 차이가 있는 방언연속체로 인해, 백제 지배층은 고구려에서 넘어온 것이고

피지배층은 마한 토착 세력이 컸기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보입니다.